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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봉 호는 약산 아시나요?
    잡동사니 2019. 6. 7. 09:05

    약산 김원봉에 대해서는 학교 다닐때 역사책에 이름 한번도 나오지 않는 인물입니다.

    재미랜도 2년 전인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김원봉에 대해서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느낀 것은 저렇게 항일운동을 열심히 하고 일본군이 제일 무서워하고 현상금도 제일 높게 걸렸던 위대한 인물인데 왜 독립운동가에서 빠졌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김원봉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김원봉은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을 조직해서 일제 독립운동가로 유명합니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서 1919년 의열단을 만들었으며, 중국 황푸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대 후반 조선민족혁명당을 이끌고 중국내 민족해방운동을 주도 했습니다.

    1939년에는 김구 선생과 함께 전국연합전선협회를 결성했고, 단일당 결성에 합의해 7당통일회를 열었으나 실패 합니다.

     

    1941년 6월에는 조선민족혁명당 전당대표대회에서 임시정부 참가를 결의했고, 조선의용대도 광복구 제1지대로 합편 됐었으며

    1942년에는 광복군 부사령에 취임을 했습니다.

    1944년에는 임시정부 회의에서 국무의원 및 군무부장에 올랐습니다.

     

     

     

     

     

    독립운동을 할때는 이렇게 화려한 경력도 있었지만은

    김원봉을 잡기 위해서 일제는 최고의 현상금을 걸었지만은 끝내는 한번도 잡지 못하고 해방을 맞이 할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김원봉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일본군은 벌벌 떨기도 했으며

    전투에서도 김원봉에는 이기는 전투가 거의 없었다고 하니까 홍길동 같은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화려한 독립운동가 였으나 1945년 해방 후에 귀국했지만 1948년 4월에 남북협상때 월북을 했습니다.

     

     

     

     

     

     

    월북 이후에는 북한에서 국가검열상과 노동상, 공산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을 거쳐 1957년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가지 올랐다는 말이 있었고, 그 이후에는 숙청 된 것으로 추측 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유명한 독립운동가였으나 해방 이후에 월북을 해서 북한에서 행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치권에서는 지금까지도 큰 논쟁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1945년 8월 14일 독립유공자 서훈하는 문제가 계속 논란이 됐고, 아직까지도 김원봉에 대해서는 독립유공자 명칭을 사용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애국하는 마음에서는 진보 보수를 따지지 말고 평가 해야 된다고 말을 하면서 다시 김원봉 선생에 대해서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재미랜 개인적인 생각도 문재인 대통령과 비슷하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월북을 해서 북한에서 행동한 것은 잘못됐지만

    일제강점기때는 국가를 위해서 독립운동을 했던 점은 높이 평가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친일파가 득실 거리고 있는데 제대로 청산도 못하는 현실에서 김원봉 같은 분이 왜 아직도 독립운동가라는 소리를 못듣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친일파라도 제대로 청산하고 난 다음에 김원봉에 대해서도 평가를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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